이윽고 슬픈 외국어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
2024/12/31
1.
하루키가 '먼 북소리'에 담긴 유럽 여행 이후, 프린스턴에서 보낸 시기에 쓴 에세이입니다. '먼 북소리'에서는 감상보다는 보내는 환경에 대한 인상을 위주로 담았다면, '이윽고 슬픈 외국어' 에서는 미국에서 지내며 느끼는 감상들을 보다 주관적인 문장으로 말합니다. 미국에서 느끼는 일본의 문화적 소모에 대한 비판이나, 프린스턴의 엘리트주의적인 모습과 보스턴의 자유분방한 모습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생각들이 드러납니다.
그는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미국인은 인종에 대해 차별적 발언은 삼가지만, 지리적으로는 꺼리낌없이 차별적 발언을 한다.’ 라는 요소가 재미있었습니다. 예를들어, ‘흑인들이 모여사는 곳은 위험하다’ 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저 동네는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2.
하루키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이건 진짜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따지는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이 분명 있었지만, 결국 일본에서 만난 짜증나는 녀석들을 생각해보면 그 비율은 비슷할 것'같은 부분이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을 때도 그 안쪽에는 이해할만한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접근방식이랄까요. 이런 관점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도록 해 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설가가 세상을 소화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는 방식, 표면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안쪽의 욕망과 원인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면모가 재밌었습니다.
3.
'먼 북소리' 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먼 북소리'에는 겪은 것들의 인상만을 담았던지라 그다지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 에세이를 읽고 하루키를 욕하는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문화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문장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에세이라는 건, 창작이라는 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의식하며 자기검열의 늪에 빠져 둔탁한 문장을 쓰는 것보다 문장의 날을 세우고 정확함을 기하는 것이 창작자가 추구해야할 자세라고 느꼈습니다.
밑줄그은 문장
정보가 감상을 앞서고, 감각이 인식을 앞서고, 비평이 창조를 앞선다.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피곤하다. 나는 그런 최첨단 파도타기 경젱에는 원래 관계없던 사람이지만, 그런 식으로 신경증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피곤하다. 이것은 완전히 문화적 화전 농업이다. 모두가 달려들어서 대로라면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창조적 재능을 지녀야 할 창작자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자신의 창작 시스템의 근원을 파헤쳐가야 할 사람이, 태워지지는 않고 살아남는다라는 것만을 염두에 두거나, 아니면 그저 단순히 남의 눈에 잘 비치는 것만을 생각하며 활동해야한다. 이것을 문화적 소모라 하지 않는다면 대체 뭐라 하면 좋을까.
내게는 '아주 평범하게 지내면 대개는 잘 풀린다'는 낙관주의-중산층에게는 최고의 보물-가 점점 그 효력과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확립하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었던 거야. 그것은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일 필요는 없어. 그저 아주 평범한 경험이어도 상관없지. 하지만 그건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드는 경험이어야만 해. 나는 학생때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어. 뭘 쓰면 좋을지를 발생하기 위해 나에게는 칠 년이라는 세월과 힘든일이 필요했던 거겠지. 아마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내가 하는 가게를 마음에 들어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령 열 명 중에 한두 사람을 빼고 가게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한두 사람이 당신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에 들어한다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가게에 와야지" 하고 생각해준다면, 가게라는 건 그런대로 유지되어가게 마련이다. 열 명 중에 여덟아홉명이 "뭐 나쁘지 않군" 하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도 열 명 중에 한두사람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는 편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