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
2025.02.06
1.
주인공인 마리와 에리 자매,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이 보낸 어떤 하룻밤의 이야기입니다.
2.
하루키의 ‘밤’이라는 모티프는 여러 작품에 걸쳐서 ’이쪽‘이 아닌 ’저쪽‘ 세상을 상징하곤 합니다. 노르웨이의 숲, 스푸트니크의 연인들, 해변의 카프카, 댄스댄스댄스, 태엽감는 새 연대기 등등 여러 작품들에서 ’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를 거울로 비춘 것 같은 세계를 상징하지요. 주인공들은 그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 반절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적과 싸우기도 합니다.
어둠의 저편에서 밤은 주요 무대임과 동시에 침대에서 잠들지 못한 인물들이 서성이는 시간입니다. 주인공인 마리는 잠에 들지 못하고 레스토랑과 러브호텔같은 장소를 방문하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고 이야기를 나누지요. 하루키는 마치 영화를 찍듯 독자의 시점을 고정시킨 채 이곳과 저곳을 오갑니다. 잠든 언니, 에리의 모습을 비추어주기도 하고 중국인 매춘부에게 폭력을 휘두른 시라가와의 모습을 비추기도 하지요. 각각의 사건들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하루키의 소설과 비교할 때, 읽기 난해한 축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컷이 바뀌듯 묘사되는 시점이 자주 바뀝니다. 현실에서 움직이는 마리를 비추다가 악몽속에 갇혀있는 에리를 비추기도 하고,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시라가와의 모습을 비추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컷씬이 시간의 흐름에 실려 영상으로 보여지기에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지만, 소설로 시점이 빈번하게 바뀌는 전개를 따라가며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마치 고개를 못 돌리도록 누군가 붙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이 다소 모호한 편입니다. 어째서 이 인물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같은 인과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결말부에서도 이야기의 끝을 말끔하게 매듭짓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구요. 책을 다 읽고나서도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된거지? 라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해설부분을 보고나서야 풀리는 의문이 꽤 많았습니다. 미디어의 관음과 마조히즘적인 노출증을 의미하는 장치라던가, ’몸‘에 대한 부분이라던가요. 하지만 그렇게 읽고 나서도 다소 내용과 의미가 따로 놀고 있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 속의 장치나 인물이 의미나 상징에서 출발했다 해도, 소설의 줄거리 안에서 살아 숨쉬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소설 바깥의 지식에서 그것을 찾아봐야지만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다면 그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면에서, 이 ’어둠의 저편‘은 제겐 다소 아쉬운 면이 많았습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부족했다고 느껴졌고, 다른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얻지 못했습니다.
밑줄 그은 문장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