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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lofi4 2025. 1. 27.

다산책방
클레어 키건
2025.01.24



1.
120페이지 가량 되는 짧은 책입니다. 분량이 짧은만큼 등장인물이 적고 스토리가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습니다. 문장이 무척 섬세하게 다듬어 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영어책으로 읽으려 했는데, 짧은 분량에 비해 문장의 난이도가 쉽지 않아 번역본을 읽었습니다. 

2.
사회가 품고 있는 부조리를 목격하는 소시민에 대해 다룹니다. 요즘의 사회는 각자도생, 자신의 생을 스스로 챙겨야 하지요. 타인의 호의나 자비에 기대는 것은 무모하고 순진한 태도로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자기 하나의 생도 챙기기 어려운 시대에, 자신이 아닌 타인을 덮치는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다들 자신이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숨을 죽이거나, 피해가 오지 않을 거리를 확보한 뒤에 공허한 말을 붙입니다. 

그런 부조리에 대항하며 잘못되었다고 선언하는 인간은 여러 곳에서 뭇매를 맞기 마련입니다. 옛부터 격언들이 경고하고 있지요. '긁어 부스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등.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부조리를 굳이 지적하는 인간은 번거로운 인간으로 취급되고, 미움을 받습니다. 

잘못된 것을 사회가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를 지적한다고 해서 개인이 얻을 이득은 없지요. 양심적인 인간이라고 존경받는 대신 오히려 '쟤는 뭔데 혼자 나대지?'라는 지탄을 받기 십상입니다. 괜히 혼자 양심있는 척 하며 귀찮은 일을 벌이고, 남들은 곱게곱게 넘어가는 일을 지적하는 번거로운 사람으로 취급받지요.

하지만 그러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타락합니다. 약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피해를 입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사회, 사사로운 이득이 사회의 방향보다 우선시되는 집단으로 타락하지요. 구성원들은 점차 사회를 넓게, 멀리 바라보는 대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삶을 전부인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쉽게 끊어지지 않지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 또한 타인의 고통을 보며 그것이 나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곤 했습니다. 내가 희생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내가 저 장소에 있던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며 질퍽한 안도감에 젖곤 했지요. 마치 사냥당한 동족의 옆에서 안심하며 풀을 뜯는 초식동물처럼, 자신과 주변의 안위만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과 안일함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에 일조하지 않았을까요. 남들과 자신이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에서 고개를 돌리는 이기심,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괜한 짓을 한다고 지탄하는 비겁함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를 만든 주범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짧았지만 긴 생각으로 이끌어주는 책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밑줄 그은 문장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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