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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교보문고2024.11.06 제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 부분도 많고, 더 나아간 부분도 많았습니다. 기존의 거대한 조직문화에서 개인의 이름으로 각자도생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부분이 이 책의 골자입니다. 이 부분은 널리 퍼진 생각이지요.  가족이나 인간관계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설문조사가 보여주듯, 현대 한국 사회는 배금주의적입니다. 간단히 그 인과관계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서울에 일자리와 사람이 몰리고, 인프라가 몰려들었습니다. 수도권 과밀화는 지방에서 가족단위로 살아가던 구조를 해체하고 무수한 1인가구를 만들었지요. 가족이 주던 심적 안정감과 소속감은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자본이 대체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가 늙거나 아프게 되었을 때 나를 돌보아 줄 것은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노후.. 2024. 11. 25.
정체성 민음사 밀란 쿤데라 2024.11.04 밀란 쿤데라는 샹탈과 장마르크, 두 연인을 중심으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대답은 주어지지 않는 질문이라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는 인간이 단일한 자아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인간이 확고불변한 중심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입장이지요. 우리는 매 순간 변화하며 장소와 관계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마음' 이나 '영혼' 이라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쿤데라의 두 연인도 마찬가지로 정체성을 잃습니다. 샹탈의 정체성은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흐려지고, 샹탈의 사랑에 의존하던 장마르크의 정체성은, 장마르크가 생.. 2024. 11. 2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 위대한 소설입니다. 프란츠와 사비나, 토마시와 테레사라는 네 명의 연애사를 다룬 것 같은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사랑보다 깊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를 현실의 관계로 펼쳐내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작가가 한 발 빠져서 관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지요. 인물들의 모티브가 무엇인지,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나서서 설명을 합니다. 이런 방식이 독자가 인물들에 몰입하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개입 때문에 이 소설이 연애소설 이상의 깊이를 갖게 됩니다.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통한 존재의 고민으로 깊어지지요. 토마시는 바람둥이로 등장합니다. 유능한 외과의인 토마시.. 2024. 11. 23.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에밀 아자르2023/06/18  멋진 소설입니다. 문장들은 정말 아이가 쓴 것 처럼 생동감넘치고 내용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까지 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생의 면모들이 다채로운 색채로, 날 것으로 쓰여집니다다. 아이들이 가질 법한 편견이나 생각들이 경계선을 넘어서며 생동감을 주지요.  모모, 롤라 아줌마, 엄마 아이샤, 하밀 할아버지, 꼬마 모세, 닐라 아줌마... 엘레베이터 없는 칠 층 건물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던 로자 아줌마.  저는 이 소설이 모모의 성장소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줄거리는 모모의 성장만이 아니라, 로자 아줌마의 노화와도 얽혀있지요. 모모가 성장하는 사이에 로자 아주머니는 죽어갑니다. 그 과정은 퍽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픕니다... 2024. 11. 22.
좀머씨 이야기 열린책들파크리트 쥐스킨트2023/07/29소설은 두 갈래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끊임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좀머씨와, 자라나는 소년인 주인공의 이야기지요. 좀머씨의 발걸음은 메트로놈같은 발걸음으로 시골 마을을 정처없이 걷습니다. 소년은 키가 키가 1미터밖에 되지 않는 시절, 나무에 재빠르게 오르고  낡은 자전거를 어줍잖게 타며 성장합니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흑발 단발머리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엄격하고 늙고 히스테릭한 퐁텐부인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무섭게 혼나고, 그래서 자살하려고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좀머씨가 멈춰서서 빵을 먹는 것을 목격하지요. 그렇게 소년은 성장하고 시간은 흐릅니다. 그 와중에도 좀머씨는 계속 계속 걸어다니고 있지요. 소년의 삶과 좀머씨의 삶은 스치듯 교차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2024. 11. 21.
사양 민음사다자이 오사무2023/09/09 체호프의 단편, 벚꽃 동산을 모티프로 다자이 오사무가 쓴 사양입니다. 저물어가는 해와 같이 몰락해가는 한 귀족 가정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요.  주인공, 장녀 가즈코는 나약합니다. 부드럽고 유순하면서도 자신의 저속한 생각에 자괴하고,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면서도 그녀를 위해 산골에 틀어박힌 자신의 삶을 떠나고 싶어하지요. 쓸쓸하고 나약합니다. 남동생이 전쟁에서 돌아옵니다. 마약중독자가 된 그는 그녀와 어머니를 괴롭히지요. 술과 마약을 빠져 집안의 돈을 탕진합니다. 안 그래도 기울어져가는 가세에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더욱 불을 지르지요. 하지만 본인도 그 쾌락을 즐기지 못합니다. 어머니와 가즈코를 더욱 괴롭게 만들면서 스스로도 괴롭게 만들지요. 어머니는 우아하지.. 2024.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