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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토머슨

by lofi4 2025. 1. 13.

 

안그라픽스
아카세가와 겐페이
2024/12/26

 

 

1.
예술도 아닌 ‘초예술’이라는 야심만만한 타이틀을 붙이고 있어서 제목부터 끌렸습니다. 초예술 토머슨, 말하자면 기능을 잃어버린 사물이 흥미로운 형태로 보존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가 의도를 갖고 만드는 예술품과는 달리 이 초예술 토머슨은 인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집니다. 반쯤 잘린 채 남은 전신주, 2층의 건물 외벽에 달려있는 문, 아무 쓸모도 없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기능만 남은 계단 등등이 그렇지요. 아카세가와 겐페이와 토머슨 협회는 일본 곳곳에 있는 이 초예술 토머슨을 발견하고 수집하여 잡지에 발표합니다. 이 토머슨들은 흔해빠진 건물의 잔해나 세월의 흔적같아 보이면서도,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설명을 듣다보면 어딘가 묘하게 설득되어 ‘그런가? 이건 좀 신기한데?’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2.
저는 판판야의 작품을 인터넷에서 찾아다니다가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보고 샀습니다. 판판야의 심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쓸데없는 것, 무용한 것에 시선을 주고 공을 들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몹시 비효율적입니다. 쓸모를 잃어버린 물건은 가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그런 물건들을 발견하고 목격합니다. 그리고 다소 과장된 자세로 그것들을 끌어모으지요. 그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3.
초반에는 자신과 주변 인물들이 발견한 토머슨만 발표하지만, 점점 다른 사람들의 제보를 받으며 일본 전역에 있는 흥미로운 토머슨들을 그러모읍니다. 그렇게 토머슨 협회도 만들고, 강의도 해나가지요. 어딘가 실없는 짓을 하는 같은데, 그것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초예술 토머슨을 채워가는 과정이 퍽 흥미로웠습니다. 

4.
다만, 잡지에 게재되었던 글을 묶은 책이라 그런지 한 권의 책으로 읽을때 리듬이 살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당시에 매달마다 잡지에서 읽었다면 흥미롭게 보았을 것 같은데, 비슷한 분류의 토머슨이 줄줄이 소개되는 것을 읽다보면 지루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정보가 단조롭게 나열되는 것 같달까요. 그래서 ‘노상 관찰학’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밑줄 그은 문장

 

토머슨은 침묵의 존재다. 그 침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때린다. 깊은 울림을 준다. 일본에 있던 토머슨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무표정으로 끈기 있게 헛스윙을 이어가던 그 침묵, 우리는 거기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건물에도 속옷과 같은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관 문패는 함참을 쳐다봐도 괜찮겠지만, 화장실 창문을 콘크리트로 막아놓은 부분 등은 뚫어져라 계속 쳐다보면 안 된다. 

훌륭하다. 뭐가 훌륭하다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원리가 형태가 되어 그곳에 조용히 제시되어 있다. 

부분적인 사체의 공포. 가령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의 잃어버린 다리는 한발 앞서 저세상으로 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한쪽 다리의 영혼이 희미하지만 발생할 것이다. 

이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가다가 닿은 곳에서 토머슨은 탄생했다가 사라진다. 그것을 끊임없이 찾아 미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초예술의 구도는 실로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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