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냄
김훈
2023.09.10
마씨 집안을 따라 줄거리가 진행되는 서사때문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배경이 한국 근현대인만큼 훨씬 가깝게 느껴졌고,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는 한 번쯤 스쳐갔을법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문장은 예리했고 시대는 숨을 쉬었습니다.
고물사업을 하며 사기로 큰 돈을 벌다가 잡혀서 몰락을 맞게 되는 마장세. 하지만 그들은 가장 사업이 활황이던 순간조차도 그리 행복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경찰에게 수배되고, 구속되었을 때도 옷을 갈아입는 것 마냥 모습이 변했다는 느낌 뿐 몰락이라는 감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인물들은 공터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습니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제 구멍을 제가 파고 들어가 스스로를 핥아야 하는 야생동물같은 사람들. 그 속에서 자신을 핥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애처럽고 괴로운 기분이 종종 듭니다.
김훈작가의 소설을 읽을때면 질긴 잡초나 가을의 갈대밭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명력이 느껴지곤 합니다. 다들 힘겹게 삶을 헤쳐나갑니다. 쉽게쉽게 나아가는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의 글은 아름답지만, 봄 꽃과 같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단, 눈 덮힌 겨울 산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감탄하며 읽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밑줄그은 문장들
아, 끝났구나, 끝났어.... 마차세 상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도 그의 한 생애가 끌고 온 사슬이 여전히 길게 이어지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옥죄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차세는 예감했다.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예감은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절박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조일 힘이 풀어진 아래를 아들에게 맡기는 그 속수무책의 무력함이 괴롭다는 말인지, 이제 끝나가는 한 생애 전체가 허접해서 송구스럽다는 말인지 마차세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미안하다는 말은 자신의 밑에 와 닿는 아들의 시선을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도순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울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울음을 누르려는 울음이 부딪치면서 울음이 뒤틀렸다. 입 밖으로 새어나온 울음이 몸속에 쟁여진 울음을 끌어냈다. 몸 밖의 울음과 몸 안의 울음이 이어져서 울음은 굽이쳤고, 이음이 끊어질 때 울음은 막혀서 끽끽거렸다. 그 울음은 남편과 사별하는 울음이 아니라, 울음으로써 전 생애를 지워버리려는 울음이었으나 울음에 실려서 생애는 오히려 드러나고 잇었다.
하춘파가 말과 세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세상을 접고 구겨서 말의 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나무 십자가가 고원에 남아서 눈을 맞았다. 계곡과 능선이 눈에 덮이고 달빛이 스며서 죄는 보이지 않았다.
박상희는 이 가엾은 남편과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살아온 날들의 시간과 거기에 쌓은 하중을 모두 짊어지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의 벌판을 건너가야 할 것이었다. 벌판은 저쪽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마차세는 어머니는 오래전에 죽었고 그 소식이 뒤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마차세의 눈이 젖어왔다. 눈물은 메말라서 겨우 눈을 적셨다.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쫒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