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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by lofi4 2024. 11. 18.

 

해냄
김훈
2023.09.10

마씨 집안을 따라 줄거리가 진행되는 서사때문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배경이 한국 근현대인만큼 훨씬 가깝게 느껴졌고,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는 한 번쯤 스쳐갔을법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문장은 예리했고 시대는 숨을 쉬었습니다. 

고물사업을 하며 사기로 큰 돈을 벌다가 잡혀서 몰락을 맞게 되는 마장세. 하지만 그들은 가장 사업이 활황이던 순간조차도 그리 행복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경찰에게 수배되고, 구속되었을 때도 옷을 갈아입는 것 마냥 모습이 변했다는 느낌 뿐 몰락이라는 감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인물들은 공터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습니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제 구멍을 제가 파고 들어가 스스로를 핥아야 하는 야생동물같은 사람들. 그 속에서 자신을 핥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애처럽고 괴로운 기분이 종종 듭니다.

김훈작가의 소설을 읽을때면 질긴 잡초나 가을의 갈대밭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명력이 느껴지곤 합니다. 다들 힘겹게 삶을 헤쳐나갑니다. 쉽게쉽게 나아가는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의 글은 아름답지만, 봄 꽃과 같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단, 눈 덮힌 겨울 산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감탄하며 읽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밑줄그은 문장들



아, 끝났구나, 끝났어.... 마차세 상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도 그의 한 생애가 끌고 온 사슬이 여전히 길게 이어지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옥죄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차세는 예감했다.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예감은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절박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조일 힘이 풀어진 아래를 아들에게 맡기는 그 속수무책의 무력함이 괴롭다는 말인지, 이제 끝나가는 한 생애 전체가 허접해서 송구스럽다는 말인지 마차세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미안하다는 말은 자신의 밑에 와 닿는 아들의 시선을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도순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울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울음을 누르려는 울음이 부딪치면서 울음이 뒤틀렸다. 입 밖으로 새어나온 울음이 몸속에 쟁여진 울음을 끌어냈다. 몸 밖의 울음과 몸 안의 울음이 이어져서 울음은 굽이쳤고, 이음이 끊어질 때 울음은 막혀서 끽끽거렸다. 그 울음은 남편과 사별하는 울음이 아니라, 울음으로써 전 생애를 지워버리려는 울음이었으나 울음에 실려서 생애는 오히려 드러나고 잇었다. 

하춘파가 말과 세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세상을 접고 구겨서 말의 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나무 십자가가 고원에 남아서 눈을 맞았다. 계곡과 능선이 눈에 덮이고 달빛이 스며서 죄는 보이지 않았다. 

박상희는 이 가엾은 남편과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살아온 날들의 시간과 거기에 쌓은 하중을 모두 짊어지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의 벌판을 건너가야 할 것이었다. 벌판은 저쪽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마차세는 어머니는 오래전에 죽었고 그 소식이 뒤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마차세의 눈이 젖어왔다. 눈물은 메말라서 겨우 눈을 적셨다.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쫒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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