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톨스토이
2023.09.05
이반에게는 인간보다 거대한 죽음을, 예브게니에게는 인간보다 거대한 성욕을, 세르게이에게는 인간보다 거대한 신앙을.
고위 관료인 이반 일리치에게는 부족할 게 없었습니다. 존경받는 판사였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넉넉한 연봉을 받는 남자였지요. 하지만 그가 점점 죽음으로 향하면서 쇠락해가는 과정은 지독합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조각같은 희망을 보여주면서도 그를 낫게하진 못하고, 주변의 인물들은 뒤에서 그가 죽은 후를 미리 준비하면서 앞에서는 그가 병이 곧 나을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그는 삶이 찬란했었기에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거대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커튼을 설치하다 옆구리를 부딫힌 것이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라는, 그 어이없는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그는 죽음으로 가면서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길래 죽어야만 하는지 물으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죽음에는 선도 악도 없지요. 신은 있을까요? 글쎄요. 분명한 건 죽음이 거기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는 죽어가며 가족들을 괴롭힙니다. 아내가 증오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고 딸과 사윗감의 방문도 마다하지요. 가족들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날 뿐입니다. 충직하고 선량한 하인만이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대해주지요. 남들은 이미 아픈 그가 떠난 상황을 준비하며 적응하고 눈물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닦아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결국 납득이나 이해와는 조금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유를 들어도 납득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 비극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자신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게 되지요.
밑줄 그은 문장들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 죽었단 말이지. 그런 일이 언제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표토르 이바노비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런 일은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났을 뿐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날 리도 없다는 지극히 그다운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냥 우울한 기분에 젖은 것 뿐이며, 시바르츠가 얼굴 표정으로 분명하게 말했듯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마음이 편해진 표토르 이바노비치는 그제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관심을 보이며 그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자세히 물었다. 마치 죽음은 원래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며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안 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마음속에 감춰둔 적개심을 드러냈고, 그들이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이 적개심의 바다에 다시 뛰어들기 전 잠시 머무는 작은 섬일 뿐이었다.
그는 불행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퍼부었다. 이런 분노야말로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임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상황과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병을 악화시키므로 불쾌한 상황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터인데도 그는 정 반대로 행동했다.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파멸의 끝자락에 매달려 자신을 이해하고 가엾게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반 일리치는 그를 위로해줄 보호막들을 찾았고, 어떤 보호막은 잠시나마 그를 구원해주는 것도 같았지만 이내 무너져 버렸다. 아니, 무너졌다기보다 투명해졌다. 죽음은 어떤 것이든 통과했으므로 무엇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차츰차츰 다가오는 무섭고 소름 끼치는 죽음만이 진실이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악마
진짜 정신병자는 다른 이들에게서 광기의 징후를 보면서 자신에게서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