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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수 있는 생각

by lofi4 2024. 11. 14.

비룡소/2024
이수지
2024.05.20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에세이입니다. 사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을 본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으나 알라딘에 들어갔다가 그림책 작가의 일상이 궁금해서 사 보았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두 아이를 기르면서 작업하고 있는지, 그림책 작가로써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신경써야 하는지,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작가의 저서로는 '파도야 놀자'와 '여름이 온다' 라는 그림책이 유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림책보다는 만화책이나 소설을 더 많이 읽지만, 그림책에도 흥미가 많습니다. 제게는 그림책이 유아용 서적이라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글과 그림이 적절히 섞여 책에 인쇄된 예술매체라는 인상이 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저는 책이라는 매체의 물성을 좋아합니다. 넘기는 소리나 냄새,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유연하면서도 네모난 모양새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책장이 미어터질 것 같아도 e-book을 읽지 않고 종이책을 사 읽는 것 같습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수지 작가가 부러웠습니다. 저는 요즘 그림을 그리려고 해도 그다지 재미가 없어서 금방 지치고, 미완성인 채로 손을 떼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계속 품고 작업하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 만들고 있는 것에 재미와 애정을 품는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저는 제가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몰라서 헤메이고 있습니다만, 찾을 수만 있다면 그곳에 몸과 마음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어차피 돈 많이 버는건 진작 글렀으니까 즐겁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화책 작가의 삶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밑줄 그은 문장들


화가 척 클로스가 말했듯이, 영감은 아마추어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작업하러 간다. 

그러나 습작이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 습작은 스스로 위안을 주기 위한 가짜 작업인 경우도 많다. 어느순간 집중하여 나아가야 할 때는 본인만 안다. 지금은 끝까지 가 봐야 할 때라는 그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 완벽해질 때를 기다릴 수 는 없다.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 

작가님, 그럼 ‘글 없는 그림책’이란 말 대신, ‘이야기가 나에게 있는 그림책’이라고 쓰면 어때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여전히 예술가가 되려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온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시간과 일상에 밀려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고 끝없이 부유하며, 내 마음을 알아줄 만한 친구 하나, 커피 한 잔 놓고 넋두리로 푸는 수밖에 없다.

종이책은 ‘만질 수 있는 형태의 생각‘이다. 종이책의 촉감과 책을 넘기는 행위는 ’책을 보고 있는 나‘를 인식하게 한다.

어느 축제에서 함꼐 대담했던 마리 오드 뮈라이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작가의 책에는 장애인과 성 소수자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말했다. “필요에 의해 대표 주자로 하나씩 넣는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이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리 잡은 연간 계획에 맞추어 진행하기 떄문에 시기를 잘 못 맞추면 발간 시기가 몇 년은 그냥 밀려 넘어간다. 그러므로, 정말 꾸준히 책을 내는 작가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프로젝트를 겹쳐 가면서 끊임없이 작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작업도 리듬을 탄다. 계속하는 사람이 계속할 수 있다.

주어진 조건이 늘 좋은 작업을 방해하는 요소만은 아닙니다. 제한과 조건이 없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 것‘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발견되고,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하는 작업은 주어진 조건을 이용해 그 틀 자체를 바꾸거나 확장해 버린 것들이곤 하지요. 그 다음에는 그저 조율입니다. 

누가 뭐라든 결국 작가는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나만 알아듣는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며 혹여 누가 관심을 주기를 바라지는 말아야 한다. 

만약 저의 세계관 안에서만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면, 영화가 점점 축소 재생산되어 ’어쩌고 월드‘라고 불리는 세계 속에 갇힐 것 같습니다. 그보다 별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등과 만나서 만들어 나가는 편이 저 자신도 재미있을뿐더러 새로운 발견도 있습니다.

모두다 내가 올려놓은 것이지만, 내가 책상 위에 뭘 올려놓았는지 짐짓 궁금해하며 작업실에 가는 길이 즐겁다면, 뭐, 이번 생은 이런 식으로 살아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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