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미시마 유키오
2024.06.06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입니다. 금각사를 읽고 미시마 유키오의 다른 책을 찾다가 읽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약한 몸을 갖고 있던 주인공은 남성의 육체를 향한 동경과 사디즘적인 욕망을 느낍니다. 그 당시의 동성애는 금기에 가까운 감정이었고, 주인공은 그것을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자신의 욕망을 숨깁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분뇨 수거인, 건장한 친구 오미,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초상을 향한 동성애적 욕망이 자리잡고 있지요. 그들의 육체가 칼과 화살에 찔려 상처입는 모습을 상상하고 욕망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다른 청춘처럼 사랑도 하고, 유흥도 즐기는 척 하지만 속에 있는 그의 사디즘적인 동성애는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그는 가면을 쓴 채 친구의 여동생과 연애를 시도하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어떤 에로스도 느끼지 못하며 차라리 자신의 머리 위로 원폭이 떨어졌으면, 하는 충동을 느낍니다. 주인공은 그것을 고백하듯 낱낱하게 서술하지요.
읽으면서 가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욕망을 숨기고 억압함으로서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능력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단단한 가면같은 정상성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얼마나 왜곡되고 억압받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억눌린 자아는 해방될 수 있긴 한걸까요? 평생토록 단단한 가면을 쓰고 정상성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건, 반대로 말해 자기 자신으로 산 적이 한 순간도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요?
밑줄그은 문장
나는 이 신비한 짐승의 금빛 눈이 홀리려는 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 있던 집안사람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 앞의 행렬이 안겨주는 공포에 가까운 환희에서 여차하면 도망칠 태세를 갖추었다. 내가 인생에 맞서는 태도는 그즈음부터 이러했다. 너무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 너무도 사전의 공상으로 지나치게 꾸며진 것에서는 결국 도망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치 아침 햇빛이 뚝뚝 녹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신발이 끌고 온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콘크리트 위 가짜 진창에, 차례차례 환성을 지르며 햇빛이 몸을 던져 추락사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빛은 멋모르고 내 목덜미에도 몸을 던졌다...
사랑과 같은 상호적인 작용에서는 상대에 대한 요구가 그대로 나 자신에 대한 요구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무지를 원하는 마음은 일시적이나마 나의 절대적인 ‘이성에의 모반’을 요구했다.
하나의 생명이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미의 육체에 숨어들어, 그를 점령하고 그를 찢어발기고 그로부터 넘쳐나서 호시탐탐 그를 능가하려 하고 있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질병과도 비슷했다. 거친 생명의 파먹힌 그의 육체는 오직 전염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친 듯한 헌신을 위해 이 세상에 자리잡은 존재였다.
사랑의 아주 깊은 내면에는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상대를 닮고 싶다는 불가능한 열망이 흐르는 게 아닐까. 이 열망이 인간을 몰아세워서, 절대로 불가능한 것을 반대의 극점으로부터 가능하게 만들려고 무익한 몸부림을 치는 저 비극적인 이반으로 인도하는 게 아닐까. 즉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서로 닮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로 조금도 닮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러한 이반을 그대로 환심을 사는 데 이용하려는 심리적 시스템이 있는 게 아닐까. 더구나 서글프게도 서로 닮는 것은 한순간의 환영인 채로 끝나버린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소녀는 과감해지고 사랑하는 소년은 내성적이 된다고 해도, 그들은 서로 닮으려고 애쓰다가 언젠가는 서로의 존재를 건너뛰어 저 너머로, 이미 대상도 없는 저 너머로 떠나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지금 이대로여서는 안 되는가. 수백 번 묻고 또 물었던 물음을 또다시 묻기에 나는 너무도 고단했다. 너무 진력이 나서 순결한 채로 제 몸을 망치고 있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나도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내가 지금 진절머리 날 만큼 지쳐있는 이것이 분명히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내가 지긋지긋해하는 이것은 몽상이며 절대로 인생이 아니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러나 다시 뒤집어 생각하면, 인간은 과연 그토록 완벽하게 자신의 천성을 배반할 수 있는 존재일까? 가령 한순간이라도.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느꼈다. 그렇지 않은가. 여행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만큼 우리가 여행을 구석구석까지 완전하게 소유하는 때는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그저 이 소유를 망가뜨리는 작업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이 여행이라는 저 완벽한 헛소동인 것이다.
내 마음의 치부를 제외한다면 그 밖에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그 한 시기와 마음의 내면까지 빼다 박은 듯했고, 나는 그 점에서 완전히 그들과 똑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그 모두가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망설이는 괴로운 억측보다는 거짓이라는 단정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것을 일부러 폭로하는 방법이 어느 틈엔가 내게는 편한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가령 이별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남녀 관계라는 것은 ‘모든 것이 지금 상태 그대로‘에 멈춰 있기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또 하나의 착각도 무너뜨렸다. 나는 숨 막히도록 똑똑히 깨달았다. 하지만 어쨰서 이대로여서는 안 되는가. 소년 시절 몇천 번을 물었던 그 물음이 다시 입가에 떠올랐다. 어째서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옮기고 모든 것을 유전하는 흐름속에 내맡기지 않으면 안 되는 괴상한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의무가 세상에서 말하는 생이라는 것인가.
사교에 능한 할머니의 예의바른 인사치례는 듣기에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지나치게 정갈하고 고른 틀니의 치열처럼, 그 말들은 이른바 무기질적인 나열의 능숙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구사노와 나와 소노코 사이에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나 일정한 의지, 일정한 체면, 일정한 배려를 뛰어넘는 감정 표출이 금지되고 만 것이었다.
어떤 인간에게도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으며 제각각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어른들은 생각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특수한 사정을 세계에서 유일한 예인 것처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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