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24.03.1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은 이야기가 품은 힘이 무척 센 것 같았습니다. 아쿠타가와상이라는 유명한 상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따로 그의 작품은 읽어보지 않다가 우연히 여행 간 곳의 책방에서 라쇼몬을 발견하여 읽었습니다.
노스님의 코, 마죽으로 인식과 인식과 주변에 흔들리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라쇼몬에서 추악한 밤공기로 들어갑니다. 빨간모자 이야기와 양식을 먹는 이야기는 전시에 목격한 비틀린 인물들에 대한 수기같은 단편이었지요.
그리고 지옥변에서, 이야기가 터져나오듯 타오릅니다. 그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불꽃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갓파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직접적인 사회풍자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보다 훨씬 사회에 깊숙히 발을 담그고 비판하는 염세적인 관점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가 이러저러한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구나,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문장은 읽기 쉽고 깔끔하면서도 예리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쓰인 소설이지만 옛스럽다는 인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글의 원형이 쉽게 추측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표면은 매끄럽게 잘 읽혔지만 그 중심, 작가가 무언가 그 이야기를 끌어낸 깊은 수원이 어떤 모양새였는지 헤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라는것을 추측하기가 어려웠다고 해도 되겠네요.
밑줄 그은 문장
영양 부족에 혈색 나쁜, 멍청한 오위의 얼굴에서 세상의 박해에 ‘울상’을 지은 ‘인간’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무위의 사무라이에게는 오위가 떠오를 때마다 세상 모든 것이 갑작스레 본래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볼품없는 딸기코와 수를 헤아릴 만큼 듬성한 수염 등이 어쩐지 일말의 위안을 자신의 마음에 전해 주는 듯이 여겨졌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저 경멸당하기 위해서 태어난 인간일 뿐 달리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던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인간은 간혹 충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욕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자는 필경, 인생에 대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이다.
항상 구박을 받는 개는 어쩌다가 고기를 던져 줘도 쉽사리 다가서지 않는다.
“여보.“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진 후, 이렇게 불렀을 때도 도시코는 여전히, 남편에게서 안색 나쁜 얼굴을 돌린 채였다.
“왜?“
”내가....내가 나쁜 걸까요? 그 아기 죽은 것이......“
도시코는 갑자기 남편의 얼굴을, 묘하게 열에 들뜬 눈길로 쏘아보았다.
”죽은 것이 기뻐요. 안됐다고 생각은 하면서도......그래도 나는 기쁘다고요. 기뻐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여보.“
”저는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첫째로 아버지 유전인 정신병만으로도 힘들고요. 게다가 저는 갓파라는 존재가 나쁘다고 믿으니까요.“
그 연설은 물론 모조리 거짓말이죠.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니 그건 정직과 다를 게 없는 거예요.
25일자 일간지에는 그의 죽음이 대서특필되었고 많은 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으나 어쩌면 그의 자살은 더없이 아쿠타가와다운 것이었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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