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소소한 일상

by lofi4 2024. 11. 16.

 

시공사

다자이 오사무

2023/08/25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집입니다. 생활에 엮인 몇가지 소소한 에피소드, 전쟁중에 겪은 고난과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후 문단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저작에 대한 이야기가 토막글로 묶여있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에게선 '인간실격'의 요조의 냄새가 납니다. 문단을 욕하면서 길길히 성내는 쪼잔함이 보입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문단의 작가를 향해 화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하는 모습, 아내의 비쩍 마른 모습이 날 것으로 담겨있습니다. 

소설 밖에서의 다자이는 왠지 한층 더 소설같은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요조보다 더 요조같은, 나약하면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꺾지 않는 소설가의 생활. 인간실격을 읽고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그의 수필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밑줄 그은 문장들

 

괴로움이니 고매라느니 순결이니 순수이니, 그런 말은 이제 듣고 싶지 않다. 쓰라고. 만담이든, 콩트든 상관 없다. 쓰지 않는 것은 예외없이 나태해서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맹신이다. 사람은 자기 이상의 일도 할 수 없고, 자기 이하의 일도 할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그것은 독자가 결정해 주리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엉터리가 아니다. 엉터리는 커녕 나는 필사적이다. 이런 소설을 지금 발표하는 것은 나한테 불이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른한 살은 서른 한 살대로 이것저것 모험을 해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가갛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난 아직 쓸 수 없다. 나는 앞으로도 여러모로 헤맬 것이다. 괴로워할 것이다. 파도는 거칠다. 그 점은 자만하지 않는다. 충분히 소심할 정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형식도 정서도 결국 서른한 살의 그것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을 가져야 한다. 서른 한 살은 서른한 살처럼 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쓰면서 괜히 슬퍼진다. 이런 얘기를 써서는 안 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이 울렁거려 도저히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정말 주의하고 주의하며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다. 무척 심하게 당해왔으니까. 
그래도 이젠 괜찮다. 나는 해볼 것이다. 아직은 조금 비틀거리지만 이제 곧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삶은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고 난 먼저 믿어야 한다. 

그렇지만 수세미 시렁정도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가난한 집이지만 수세미 시렁이 생긴다는 것은 어딘지 기적 같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집에도 수세미 시렁이 생긴다니 꿈 같아서 전 너무 기뻐요, 라고 애처로운 주장을 했기 때문에 남편은 마지못해 이 수세미 시렁을 마저 만들었지. 

이 작품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그것은 독자가 결정해주리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엉터리가 아니다. 엉터리는 커녕 나는 필사적이다. 이런 소설을 지금 발표하는 것은 나한테 불이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른한 살은 서른한 살대로 이것저것 모험을 해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난 아직 쓸 수 없다. 나는 앞으로도 여러모로 헤맬 것이다. 괴로워할 것이다. 파도는 거칠다. 그 점은 자만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형식도 정서도 결국 서른한 살의 그것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을 가져야 한다. 서른한 살은 서른한 살처럼 쓰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문장 가운데서, 이 부분은 잘라내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이대로가 좋을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부분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그 부분에 뭔가 덧붙이는 것은 당치도 않은 짓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불발의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라. 그런데 고백하지만, 수상작을 일독하고 나서, 남몰래 안심했다. 나는 패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써나갈 수 있다. 아무에게도 허용되지 않을 나 하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확신. 

우리는 완전히 다음 시대의 작가이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년을 읽으시겠습니까? 아름다움은 남이 일러줘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서 문득 발견하는 것입니다. 만년 안에서 당신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독자의 황금권리입니다. 그래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못 알아볼 녀석은 두들겨 패도 절대로 알 수 없거든요. 

 

역겨운 남자. 이 역겨움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나의 꼴사나움에 꽃을 피게 할 수 있다. 

창작에서 가장 당연히 힘써야 하는 것은, ‘정확을 기하는 일’ 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풍차가 악마로 보이거든 주저 말고 악마로 묘사해야 합니다. 또 풍차가 역시 풍차 이외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대로 풍차를 묘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은 풍차가 풍차로 보이지만,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으면 예술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뻔한 궁리를 이리저리 하여 낭만적임을 자처하는 멍청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런 자는 평생 가도 무엇 하나 포착하지 못합니다. 소설에서는 결코 예술적 분위기를 노려서는 안됩니다. 

그저 진실하고 우직하게 인상의 정확을 기하는 일 한 가지만 노력해 보세요. 당신에게는 아직 당신 자신의 인상이라는 것이 없는 듯이 보이네요. 그래서는 언제까지나 무엇 하나 정확히 묘사할 수 없습니다. 주관적이 되라! 강력한 하나의 주관을 지니고 나아가라! 단순한 눈을 가져라! 

이 점에 환상의 불가사의함이 존재한다.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안 본 사실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야말로, 고귀한 보석이 빛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것을 쓰고 싶은 것이 작가가 사는 보람이다. 

인생이란,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것만은 말할 수 있는데, 괴로운 것이다. 태어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그저 남과 다투는 것이며, 그 사이사이에 우리는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도움이 된다.
그까짓 게 뭔가? 맛있는 것을 소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맛보지 않는다면, 어디에 우리가 사는 증거가 있겠는가? 맛있는 것은 먹어보아야 한다. 맛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 중 한명인 자네가 자신이든 남이든 다치게 할 나이프를 손에 들기 전에 다자이 책을 먼저 읽어주길 바래. 
-시게마쓰 기요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반 일리치의 죽음, 광인의 수기  (0) 2024.11.18
라쇼몬  (1) 2024.11.17
롤리타  (1) 2024.11.15
Sputnik Sweetheart (스푸크니크의 연인)  (1) 2024.11.14
만질 수 있는 생각  (1)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