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밀란 쿤데라
2025.01.18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입니다. 시인 야로밀의 생애를 다룬 소설입니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초현실적으로 도약하는 자비에르의 파트에서 집중력을 조금 잃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사랑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감정으로서 여겨지지만, 쿤데라는 이 소설에서 사랑을 추적하여 그것이 어떻게 사람의 일생을 비트는지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만족을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하지만, 그 사랑은 결국 집착으로 발전합니다. 야로밀의 자립을 억압하고, 그를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지요. 그로인해 야로밀은 여자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억압과 거짓으로 얼룩진 관계를 맺게 되지요. 쿤데라는 그 과정을 메스같은 문장으로 낱낱하게 해체하여 보여줍니다. 그러한 문장을 읽노라면 왠지 축축한 슬픔의 덩어리가 만져지는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어떻게 폭력과 파국으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썼던, ‘아름다운 감정으로 사람은 나쁜 문학을 만든다’라는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의 한계이자 비극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지는 복잡성의 원천이기도 하겠지요.
우리가 현실의 생활에서 개개인이 품은 복잡성에 닿을 기회는 드뭅니다. 가벼운 사이는 물론,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면에 도달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몹시 어렵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하고 규격화하여 ‘이해’라고 부르곤 합니다. 성별, 국적, 직업같은 단어 하나로 사람을 재단하기도 하고, 숫자로 치환하여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요. 일상에서는 인간이 가진 복잡성을 들여다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물이 갖고 있는 복잡한 면모들을 낱낱히 드러내고,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나가는지 보여주는 쿤데라의 소설을 읽다보면 생을 수술대에 올려 메스같은 문장으로 가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읽고나면 항상 무언가가 남습니다.
책의 제목 ‘생은 다른 곳에’라는 문장에서 꿈꾸는 인간의 생을 생각했습니다. 꿈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생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금이 아닌 시간, 혹은 여기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지요. 시간이 흘러 꿈꾸었던 시간과 장소에 도달한다 해도 생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멀리 떨어진 미래로 날아가지요. 그렇기에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 생의 모습을 온전히 보고 느낀다는 건, 야로밀의 생애가 그랬던 것처럼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생은 한없이 유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서는 그곳을 꿈꾸고, 그곳에 도달해서는 또 다른 장소를 꿈꾸고, 떠나게 될 힘을 잃고 나서는 자신이 떠나온 곳을 꿈꾸게 되는, 그런 유랑.
밑줄그은문장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다른 사람의 눈이 심판하도록 맡겨버렸고-그래서 그것은 불안한 불확실성의 원천이 되었다.
즐거운 자극을 받은 그녀는 그후 어휘들을 습득하려는 아들의 시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인생은 길어도 기억력은 짧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는 암적색 표지를 씌운 공책을 사다가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기록해두었다.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자신의 옹졸함과 직면하게 된다면, 그때 우리들은 어디로 도망칠 수가 있단 말인가? 몰락으로부터의 도피는 위로 향하는 것밖에 없다!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뿌리치고 가버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창 너머의 세계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만일 그 세계를 위해서 사랑스러운 여인을 버린다면, 그때는 배반한 사랑의 대가로 인해서 그 세계가 훨씬 더 가치있게 되리라.
그는 오직 자신만이 이해하던 독특성의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보편성의 아름다움과 바꾸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랑은 불완전한 존재로부터,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인간적인 상대방을 소중하게 사랑받는 존재로 창조하고자 한다.
그렇다,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의 사랑으로 그녀의 온갖 잘못을 언제라도 용해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거기에는 꼭 한 가지 조건이 부수되었다. 그 조건이란 그녀가 야로밀의 사랑이라는 용액 속으로 얌전히 스스로 들어가고, 이 사랑의 욕조 속으로 그녀가 완전히 가라앉아서, 단 한 가지 생각도 다른 곳으로 흩어져나가지 않고, 그의 언어와 사상이 이루어놓은 수면 밑에 가라앉은 상태에 만족해야 하며, 그녀의 육체와 영혼이 다 같이 철저히 그 세계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정시인의 천재성은 경험 부족의 천재성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어휘들을 수정처럼 조형 있는 구조로 배열한다. 시인 자신은 성숙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는 그가 경탄하며 마주 보고 서 있는 예언의 궁극성을 가진다.
그러나 역사가 문을 두드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로 들어온다. 그것은 비밀경찰의 모습이나 갑작스러운 혁명의 모습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역사라고 해서 항상 극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더러운 구정물처럼 일상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스며들기도 한다. 우리들의 이야기에서는 역사가 속옷의 형태를 취하고 등장한다.
술처럼 그의 머리를 취하게 만든 그 증오는 유혹적이고도 아름다웠다. 증오심에 더욱 취하게 된 까닭은 그것이 여자로부터 되튕겨 그를 상처입혔기 때문이었는데, 야로밀은 붉은 머리의 여자를 쫒아버리면 그가 소유한 하나뿐인 여자를 잃는 셈이라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증오심이었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정당화될 수 없고 자신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이 어쩌면 그를 더욱 잔인해지도록 만들었다. 그 까닭은 그의 마음을 끌어당신 것은 심연-고독의 심연, 자아 혐오의 심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들은 그들의 생이 아닌 다른 생들을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한다. 그대 또한 그대가 실현해보지 못한 모든 잠재성들을, 그대의 모든 가능한 삶들을 다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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