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셰익스피어
2025.03.05
1.
옛날에 읽었으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인 전개 속에서 언어의 정확함과 권력의 구조, 배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2.
막내딸 코딜리어는 리어왕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자리에서 '없음'이라 대답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의미로요. 하지만 리어는 그 말을 코딜리어가 자신을 향해 가진 사랑이 '없음' 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녀를 가혹하게 내칩니다.
코딜리어는 말의 정확함을 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말로써 리어를 향한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코딜리어는 놀란 리어에게 '없음' 을 재차 강조하는 대답을 합니다. 입보다 무거운 사랑, 진실을 표현하려 하지요. 하지만 그녀의 정확한 말은 이해받고자 하는 소통의 면모가 결여되어있습니다.
코딜리어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기에 자신의 사랑이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도리를 다 하는 사랑을 하는 것이고, 남편이 생기면 그 사랑은 절반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이 대답은 리어를 분노케 합니다.
코딜리어의 대답을 보며 진심을 표현하는 것의 위험성에 생각했습니다. 진심 그 자체는 위험한 것이 아니지만, 진심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입니다. 말이라는 수단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없습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의미는 맥락과 주체에 따라 달라지기 십상이지요. 코딜리어가 '없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로 담을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리어가 그 '없음'을 사랑의 '없음'이라고 받아들인 것과 같습니다.
코딜리어는 이러한 말의 미끄러움을 생각하고, 자신의 '없음'에 대해 온당한 설명을 덧붙여야 했지 않을까요. 리어가 자신의 말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은 정확하게 표현했으니 알아서 잘 알아들으라고 배짱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이 선택이 파국의 씨앗이 됩니다.
말의 정확성을 기한다는 것은 '내가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오해의 소지 없이 '말을 전달받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버지인 만큼 더더욱 알아듣기 쉬운 방식으로 언어를 전개하는 게 좋았겠지요.
물론 코딜리어의 대답에 대한 리어의 반응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점이 이 파국의 주된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리어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라는 감정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면, 코딜리어에게는 '진실이 중요하다면, 왜 그것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도록 설명하려 하지 않았는가?'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제겐 이 부분이 리어왕의 주제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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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내 사랑은 분명히 내 입보다 더 무거울 테니까.
주상이 우둔할 땐 직언이 명예로운 법이지요.
당신은 현명해지기 전엔 늙지 말아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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