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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i4 2025. 3. 10.



민음사
장그르니에
2025/03/08



1.  
장 그르니에의 선집입니다. 매력적인 에세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카뮈의 에세이집인 <결혼, 여름>은 읽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은 한결 읽기 수월해서 좋았습니다.  

2.  
제게 좋은 에세이는 솔직한 마음과 아름다운 문장을 품은 글입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숨기려고 애쓰거나 젠체하는 글, 지나치게 일상적인 단상만을 품은 글은 좋은 에세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너무 현학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생각을 포착하는 정도가 에세이라는 형식에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장 그르니에의 <섬>은 매력적인 에세이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이 많습니다.


담긴 이야기중에서 <고양이 물루>가 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양이, 물루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씁니다.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부터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려운 최후까지 보여주지요. 

그는 물루를 잘 기르다가 고양이를 데리고 떠날 수 없는 상황이 오자 그를 맡길 곳을 찾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고민 끝에 결국 수의사에게 데려가서 안락사시킵니다. 험악한 길거리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다 죽는 대신, 자신이 살던 집에 묻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장 그르니에는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적습니다. 수의사가 아직 살아 있는 물루에게 "참 예쁜 고양이였네요."라고 말하는 부분, 자신이 무슨 권리로 고양이의 생사를 멋대로 결정하는가 고민하는 시간, 죽은 사체를 집 마당에 묻는 과정까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체념하는 부분과 물루가 죽어 정원에 묻힘으로써 '그는 이제 행복하다'라고 평하는 부분도 보여줍니다.  

자신의 사정 때문에 그토록 사랑하던 고양이를 안락사시키고, 그를 묻으면서 '그는 이제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것. 제게는 이 이야기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극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사건처럼 보였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존재를 제 손으로 죽이는 것, 그리고 ‘그는 이제 죽어서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이 이야기가 제겐 인간이 품은 모순과 이성과 논리가 자아내는 우울한 아이러니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물루를 죽인 뒤 묻으면서 말하는 것처럼 '행복'이라는 게 삶을 지나 죽음 뒤에 오는 것이라면, '행복'이란 것은 고단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울한 이들을 위한 위로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밑줄 그은 문장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그날부터’ 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들 삶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내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것이 차례차례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는 터니까 말이다. 

나는 그냥 살아간다기 보다는 왜 사는가에 의문을 품도록 마련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오히려 ‘변두리로 밀려나’ 살아가도록 마련된 것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 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었던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 준다.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것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때에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불행한 존재들에 대한 이른바 연민 때문이라지만 사실은 그 존재들의 비참한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 또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당사자보다도 더 감수하기 어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한 일-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인간. 이것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가장 훌륭한 몫은 바로 인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그것이니까…폭력에 의하여, 힘에 의하여, 계책에 의하여 터무니없는 제도에 의하여, 견딜 수 없는 속박에 의하여 인간으로부터 그의 신성이 분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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