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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by lofi4 2025. 3. 10.


민음사
안톤 체호프
2025/02/28



1.
가끔 러시아의 서늘한 문학을 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장편, 소위 말하는 벽돌책을 읽을 각오는 서지 않을 때가 있지요. 저는 그럴 때 체호프의 단편을 읽습니다. 예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감명깊게 읽었는데, 그 모티프가 체호프의 <벚꽃 동산>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종종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체호프의 단편이 새로 나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2.
체호프의 작품을 읽다보면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등장인물을 성실하게 묘사하고, 그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대신 보여줍니다. 인물들은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대사와 행동으로 표현하지요. <개를 산책시키는 부인>에서 주인공과 부인이 극장에서 재회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어떤 작가는 인물의 내면을 해체하여 낱낱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숨김으로써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체호프는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씁니다. 몇몇 작품은 별다른 감흥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지만, 어떤 작품은 장편보다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3.
이 책에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에 대하여>가 가장 좋았습니다. 사랑을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누군가의 사랑을 두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무의미함 을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얼마나 모순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밑줄 그은 문장

"팔꿈치는 아무리 가까워도 깨물지는 못하지...행복은 있짐나 행복을 찾을 지혜가 없어요.
<행복>

만일 운명이 저나 나리를 심하게 괴롭히더라도 그 운명에게 자비를 구하거나 엎드려 빌지 마세요. 외려 운명을 무시하고 조롱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운명이 저와 나리를 조롱할 겁니다.
<유형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자네의 온갖 진지한 행동은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할 거야. 만일 자네가 자유를 위해 싸우러 간다면, 그 행동 역시 자네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할 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요컨데 가까운 이들의 평온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상에 투철한 삶은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네.
<이웃들>

사랑에 있어선 개인의 행복이 중요한 문제인 만큼 그 모든 걸 알 수 없겠지만, 누구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순 있겠죠. 지금까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바로 '사랑의 신비는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쓰고 이야기했던 다른 모든 것들은 해명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제기한 데에 불과하죠. 어느 한 경우에 적합해 보이는 설명도 다른 열 가지 경우엔 적합하지 않아요. 내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화하려 애쓰지 말고 각각의 경우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겁니다. 의사들이 말하듯 각각의 경우를 개별화해야만 해요.
<사랑에 대하여>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쓰라린 고통을 느끼며,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고 하찮고 거짓되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사랑을 할 때 그 사랑을 논하려면 일반적인 의미의 죄나 선,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하고 높은 곳에서 출발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절대 사랑을 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저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불행해요. 앞으로도 절대 행복하지 못할거예요. 절대로!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맹세해요, 제가 모스크바로 갈게요. 그러니 지금은 헤어져요! 나의 다정하고 소중한 사람, 지금은 헤어져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무엇 때문에 그녀는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그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비쳤고, 여자들은 실제의 그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남자, 평생 간절히 찾아다녔던 남자를 사랑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좀 더 세월이 지나고 해결책을 찾으면 그땐 정말로 새롭고 멋진 삶이 시작될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아직 멀고도 멀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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