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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lofi4 2025. 4. 19.



페트릭 브링리  
웅진 지식하우스  
2025/04/09 (한글)  
2025/04/16 (영문)  

1.  
현대 사회에서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오늘의 트렌드라고 광고하던 것이 내일이면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시대이지요. 저자 페트릭 브링리는 형을 잃은 슬픔이 그렇게 순식간에 흘러 사라지는 것이 싫어 잡지사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합니다.  

2.  
미술관에 걸린 그림과 예술 작품, 유물들은 정지해 있습니다. 수십 년부터 수천 년, 수십만 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들이 머금은 세월은 길어야 100년 남짓한 인간의 삶으로는 가늠하기 어렵지요. 그런 물건들이 품은 세월을 두고 불멸이나 영원을 떠올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루하루 늙고,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조차도 희석되지요.  

저자는 정지해 있는 아름다움 속에서 형을 잃은 슬픔을 애도하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고 관찰합니다. 경비원의 시선은 바쁜 관람객의 시선과는 사뭇 다릅니다. 예술을 오래도록 본다는 점에서도, 예술과 관람객의 상호작용을 옆에서 목격한다는 점에서도 다릅니다. 타인이 무엇에 감탄하고 감명받는지를 옆에서 지켜보면 예술작품이 주는 울림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시간을 뛰어넘는 것들에 경외심을 느낍니다. 수백 년 전에 만들어졌는데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고전을 볼 때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제 미감은 그리 예리하지 않아 그림이나 조각상이 품은 아름다움을 쉽게 찾아내진 못하지만, 가끔 그것들이 머금고 있는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발견할 때면 가슴이 울리곤 합니다.  

3.  
저자는 그림과 조각상, 유물 사이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건 현대 사회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정지’의 시간이지요. 가만히 서서 관람객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수천 년 동안 존재했고 내 죽음 뒤에도 존재할 이집트의 유물과 마주하고 있는 경험은 무척 기묘할 것 같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는 원형 구조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수천 년 동안 제자리를 지키는 피라미드를 매일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에겐 그것도 하나의 진실이었겠지요.  

4.  
저자는 예술 속에 정지한 채로 자신의 상처를 봉합합니다. 아름다움을 통해 정지한 시간 속에서 형의 이른 죽음으로 받은 상처를 회복하지요. 인류는 줄곧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경험해왔고,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때로는 그 상처로 인해 죽고, 때로는 회복하며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저자처럼 아름다움 속에 정지한 채 자신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저는 그 정지가 부러웠습니다. 아름다움 속에 정지한 채 생의 가벼움을 만끽하는 것.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기회를 얻기가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긴 휴가를 보내도 머릿속 한켠에는 다시 흐름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꿈틀거리며 정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니까요.  

그가 만끽한 슬픈 여유가 부러웠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하면서도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의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더 많이 탐구할수록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내가 본 것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은 서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세밀한 부분들로 가득할 테다.  

어쩌면 예술 작품은 삶의 예술적이지 않은 측면을 묘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단조로움, 불안함, 그리고 차례로 밀려드는 빌어먹을 일들에 파묻혀 큰 그림을 볼 능력을 잃어버리는 측면 말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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