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
2024.03.17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 댄스댄스댄스, 그리고 티비 피플을 쓰던 무렵, 유럽에서 지내며 쓴 에세이입니다. 1980년대 후반이군요. 그리스에서 시작합니다.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소설을 집필하며 여행을 하는 일, 그야말로 낭만입니다. 하루키는 그의 귓가에 먼 곳에서 울려퍼지는 북소리가 들렸고, 여행을 멀리 떠나고 싶어졌다고 말합니다. 서른 일곱, 마흔이 되기 전에 써야 할 소설이 두어권 있었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리스와 로마, 이탈리아와 영국을 방문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소설에 힘을 다 쏟고 있어서 그런지 에세이에는 어떤 ‘생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 겪었던 일들이나 궂은 날씨, 만났던 사람에 대한 표면적인 정보가 주로 서술됩니다.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도 그다지 없고, 어디에 묵었고 무엇을 썼으며 어떤 요리를 먹었다-라는, 일기에 가까운 에세이입니다. 담백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읽는 게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을 어떤 환경에서 썼는지를 읽는 것은 꽤 즐거웠어요. 자세하게 묘사되진 않습니다만, 추운 겨울날 난로와 붙어서 쓰거나 오버코트를 입은채로 방 안에 틀어박혀서 썼다고 합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는 오케스트라를 듣거나 연극을 보았다고 하는군요.
그의 유럽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슴슴한 맛의 하루키 에세이.
그리고 이탈리아 차는 사지 말 것, 로마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할 것.
밑줄그은 문장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들려왔다. 아주 갸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말하자면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활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비유적인 총체
내가 왜 그런 소설을 썼는지조차 나는 잘 모른다. 여하튼 그때는 그것밖에 쓸 수 없었다. 좋든 싫든 나로서는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직 한 가지, 그 소설에 관해서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는 이국의 그림자 같은 것이 숙명적으로 배어 있다는 사실뿐이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화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가는 정경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을 자기 존재의 수준기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 그렇게 사용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문장을 써나가는 상주적 여행자였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신에게 기도하기에는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너무 내 멋대로 살아왔다. 운명을 향해 기도하기에는 나는 너무 나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다.
그 조깅화는 아무도 잊어주는 사람이 없는 과거의 작은 실수처럼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할 수 없이 나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 종이꾸러미를 받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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