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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사회 미우 판판야2023/11/16 이 책, 물고기 사회의 가장 메인 스토리는 물고기들이 진화하여 어항을 사들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작업은 카스텔라풍 찜케이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판판야는 '카스텔라풍 찜 케이크'라는 편의점 빵에 매료되어 그 빵을 구하러 다니는 여정을 만화로 남겼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편의점 빵이라는 건 그다지 굉장한 건 아닙니다. 유멩 제과점에서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도 아니고, 그저 공장에서 만들어져 편의점에 진열된 평범한 빵이지요. 거기에 무슨 매료될만한 장점이 있을까요? 아무리 맛있어봐야 고작 편의점 빵일텐데요.하지만 이 이야기가 가진 매력은 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판판야가 '카스텔라 풍 찜케이크'에 매료되어 빵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일련의 과정에 .. 2024. 11. 19.
공터에서 해냄 김훈 2023.09.10 마씨 집안을 따라 줄거리가 진행되는 서사때문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배경이 한국 근현대인만큼 훨씬 가깝게 느껴졌고,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는 한 번쯤 스쳐갔을법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문장은 예리했고 시대는 숨을 쉬었습니다.  고물사업을 하며 사기로 큰 돈을 벌다가 잡혀서 몰락을 맞게 되는 마장세. 하지만 그들은 가장 사업이 활황이던 순간조차도 그리 행복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경찰에게 수배되고, 구속되었을 때도 옷을 갈아입는 것 마냥 모습이 변했다는 느낌 뿐 몰락이라는 감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인물들은 공터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습니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제 구멍을 제가 파고 들어가 스스로를 .. 2024. 11. 18.
고래 문학동네 천명관 2024.06.22 인칭과 문체이 소설의 화자는 마치 장터에서 이야기를 팔던 전지전능한 이야기꾼처럼 서술합니다.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구어체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과장된 표현과 적극적인 인물 평가가 이야기 속에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요. 특히 무게를 과장하는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춘희가 돌도 되기 전에 30kg이 넘었다든가, 걱정이 살찐 고래와 같을 때 1톤에 이르렀다는 부분 등이 그러합니다. 이는 이야기를 부풀리며 청중을 끌어들이는 장터의 이야기꾼 같은 느낌을 주며, 독자는 이 구어체적 서술 덕분에 이야기의 청자로서의 입장을 취하게 되지요.이러한 서술 방식은 특정 인물의 삶에 몰입하기보다는 그 인물의 사건을 거리감 있게 따라가게 만듭니다. 때문에 독자는 인물의 감정.. 2024. 11. 18.
이반 일리치의 죽음, 광인의 수기 열린책들 톨스토이 2023.09.05 이반에게는 인간보다 거대한 죽음을, 예브게니에게는 인간보다 거대한 성욕을, 세르게이에게는 인간보다 거대한 신앙을.  고위 관료인 이반 일리치에게는 부족할 게 없었습니다. 존경받는 판사였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넉넉한 연봉을 받는 남자였지요. 하지만 그가 점점 죽음으로 향하면서 쇠락해가는 과정은 지독합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조각같은 희망을 보여주면서도 그를 낫게하진 못하고, 주변의 인물들은 뒤에서 그가 죽은 후를 미리 준비하면서 앞에서는 그가 병이 곧 나을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그는 삶이 찬란했었기에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거대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커튼을 설치하다 옆구리를 부딫힌 것이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라는, 그 어이없는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2024. 11. 18.
라쇼몬 민음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24.03.17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은 이야기가 품은 힘이 무척 센 것 같았습니다. 아쿠타가와상이라는 유명한 상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따로 그의 작품은 읽어보지 않다가 우연히 여행 간 곳의 책방에서 라쇼몬을 발견하여 읽었습니다. 노스님의 코, 마죽으로 인식과 인식과 주변에 흔들리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라쇼몬에서 추악한 밤공기로 들어갑니다. 빨간모자 이야기와 양식을 먹는 이야기는 전시에 목격한 비틀린 인물들에 대한 수기같은 단편이었지요.  그리고 지옥변에서, 이야기가 터져나오듯 타오릅니다. 그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불꽃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갓파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직접적인 사회풍자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보다 훨씬 사회에 깊숙히 발을 담그고 비판.. 2024. 11. 17.
나의 소소한 일상 시공사다자이 오사무2023/08/25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집입니다. 생활에 엮인 몇가지 소소한 에피소드, 전쟁중에 겪은 고난과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후 문단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저작에 대한 이야기가 토막글로 묶여있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에게선 '인간실격'의 요조의 냄새가 납니다. 문단을 욕하면서 길길히 성내는 쪼잔함이 보입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문단의 작가를 향해 화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하는 모습, 아내의 비쩍 마른 모습이 날 것으로 담겨있습니다.  소설 밖에서의 다자이는 왠지 한층 더 소설같은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요조보다 더 요조같은, 나약하면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꺾지 않는 소설가의 생활. 인간실격을 읽고 매.. 2024. 11. 16.